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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징후들:회복탄력성을 선물해 준 멘토

by 딘성 2022.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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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멘토들을 우리에게 보살핌과 관심, 사랑을 전해줌으로써, 우리가 인생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난 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다. 보리스 시륄니크는 미국의 심리학자 에미 워너의 이론을 통해 회복탄력성의 개념을 알게 된 후, 신경정신과 실무에서 발견한 여러 관찰 결과를 하나의 결론으로 통합할 수 있었다. 그것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고 그 충격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었거나 삶이 망가진 사람들도, 자신에게서 예상 밖에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고 보통 사람들처럼 정상적인 자기 발전을 다시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제대로 밝힐 수 없었다. 심지어 어떤 환자들은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정도가 심각하고 정신에 생긴 균열이 복구 불가능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즉 아주 어릴 때 자기 부모가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본다든지, 혹은 내전으로 인해 부모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등 폭력적이거나 야만적인 사건에 노출되었다고 해도- 다시 삶의 활력을 되찾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이 그런 회복탄력성을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부분적인 수수께끼로 남았지만, 수많은 이로운 요소들이 거기에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성격적으로 회복탄력성이 '때 이른 형성(인생의 초기에, 즉 정신적인 외상을 겪기 전에 받았던 정성과 사랑)'을 이루었다거나, 보호 기제(꿈, 부정하기, 자아 분열 등등)가 작동하여 확립된 경우 등이 그렇다. 물론 이런 경우들은 문제 있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충격이 야기한 폭력성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자신의 정신적인 외상에 대해 스스로 용납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 간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게 해주는 활동을 찾아낸 일, 폭력성을 순화시키는 일(글쓰기, 음악 듣기, 연극 보기 등), 그리고 특히 '회복탄력성을 주는 멘토'와의 만남도 그 이로운 요소들 중 하나였다. 선험적인 탐구 방식을 들이대서 누가 그런 멘토가 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부모나 교육자, 심리학자, 학교 교직자, 대부나 대모 등 누구든지 멘토가 될 수 있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려운 이 역할들을 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 상관없다. 즉 쉽게 판단 내리지 않기, 타인을 그의 과거 속에 가두지 않기, 타인에게 나타나는 조짐들 파악하기, 그를 희생자로 한정 짓지 않기, 그와 시간 보내기,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것과 그 길이 외상의 재발로 가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기, 그를 신뢰하되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기, 그를 재촉하지 않고 급박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배려 깊고 다정한 모습을 보이기, 편하게 농담을 건네는 여유를 갖기, 이런저런 잡담 나누기,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요약하면, 미국의 위대한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승낙'이라 표현했던 사랑의 형태, 즉 본래적 의미에서의 '호의'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이 필요할 뿐이다. 보리스 시륄니크는 자서전 『당신 자신을 구원하라, 그러면 삶이 당신을 부를 것이다』에서 자신에게 회복탄력성을 안겨주었던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 한 바 있다. 1942년에 그의 부모는 자기 아들이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가는 것을 막으려고 당시 고작 다섯 살이었던 시륄니크를 어느 하숙집 주인에게 맡겼다. 시륄니크의 부모는 아들에게 돌아오지 못했고, 그는 몇 달이 지난 후 사회 복지원에 가게 된다. 그리고 1944년, 게슈타포(독일 나치 정권의 비밀 국가 경찰. -역주)에 고발을 당한다. 누군가가 50유로를 받고 그가 있는 곳을 밀고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보르도에 있는 거대한 교회당에서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다시 모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교회당 화장실에 숨는 데 용케 성공했고, 한 간호사가 작은 화물차 안의 환자용 침대 매트리스 밑에 숨겨줌으로써 최종적으로 그를 살렸다. 이어서 어떤 레지스탕스 조직망의 보호를 받게 된 그는 '장 라보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는 어느 농가의 소년 행세를 하게 되었다. 새로운 이름으로 새 인생을 살게 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침묵을 지키며 거의 혼이 나간 상태로 농가 주변을 떠돌아다녔다. 사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감춘 것 이상으로, 스스로도 자신의 존재를 상실한 상태였다. 그는 겁에 질렸고, 나중에 그가 '심리적인 단말마'라는 말로 정의했던 그런 극심한 고통이 그를 집어삼켰다. 그렇게 10년 동안(더 어렸던 시절부터 합산하면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는 계속 흔들이는 삶 속에서 우왕좌왕했다. 자기가 남들과 다르다는 인식에서 오는 부끄러움과 더불어, 부모 없는 고아로서 자기만 비정상적이라고 느끼는 데서 오는 수치스러움을 지닌 채, 그는 최소한의 인간관계도 맺을 수 없었고 최소한의 심리적 안정감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열 살이 되어서야 간신히 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열한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이모인 도라가 보르도에 있는 자기 집으로 그를 데려가서 키우게 되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학교 수업도 따라갈 수 없었고 기본적인 규율도 지킬 수 없었던 그는 학습 부진아 반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도 수업을 못 따라가면 특수학교로 가야 할 참이었다. 직업 무용수였고 본래 쾌활한 성격을 지녔던 도라 이모는 정신적인 상처로 가득한 자기 조카를 돌보는 일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아닌 삶의 기쁨을 조카에게도 전해주려고 애썼지만 아이의 무거운 표정이 지닌 장벽에 번번이 부딪히곤 했다. 게다가 그가 과거부터 지녔던 일종의 쇼크 상태는 어두운 인식을 그의 의식에 심었다. 그러나 도라의 남자친구인 에밀과의 만남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보리스 시륄니크는 이렇게  회상했다. "고라 이모가 나에게 에밀 아저씨를 소개해 주었을 때 그는 문 옆에 계속 서있었다. 의자 여러 개를 들여놓기에는 방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왜, 그를 만나자마자 그에게 매료되었던 것일지 생각해 본다. 사실 오늘날 다시 그때를 돌이켜보면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외양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내 마음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것들을 건드리고 있었다고, 그것은 바로 활기와 친절함이었다. 다시 말해서 에밀 아저씨는 내가 언젠가 어른이 되면 지니고 싶었던 그 성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과거에 도라 이모가 나에게 자기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을 때는 그런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었다. 나는 코르시카 출신의 곡예 무용수라든가, 모리셔스 출신에다 몽마르트르의 '프레드 아스테르(미국의 무용가이며 가수 겸 배우. -역주)'라고 불렸던 무용수 친구를 소개받기고 했다. 나는 그분들이 쾌활하고 호감 가는 놀라운 무용수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두 분을 무척 좋아했지만 그들의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날 도라 이모는 에밀 아저씨를 내게 소개해 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앞으로 함께 살 거야. 에밀은 과학자인데 럭비도 곧잘 한단다.' 사실 나는 그때 과학이 무슨 학문인지, 럭비가 무슨 운동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모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나의 내밀한 세계가 갑자기 활짝 열린 것처럼 나는 점점 더 총명한  학생이 되기 시작했다." 과학 연구소의 소장이었던 에밀은 연구소 가운을 입고 있지 않을 때면 럭비 선수들이 즐겨 입는 폴로셔츠를 걸치고 있거나 애인인 무용수의 몸을 자기의 단단한 팔에 끌어안고 있었다. 에밀은 삶에 대한 강렬한 힘을 발산하고 있었고, 정말 갑작스럽게 보리스의 마음은 그를 선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그렇다고 해서 에밀이 아직 청소년에 불과했던 보리스와 산더미처럼 많은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는 자신의 본모습 그대로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을 뿐이다. 즉 그는 몸이 튼튼하고 박식한 사람이었으며, 애인인 도라와 함께 단순한 활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에밀은 하나의 재능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거의 하늘이 내려준 천부적인 소질이라고 할만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보리스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를 겁먹은 생존자로 보지 않았고 부모를 다 잃은 고아로도 보지 않았으며, 정신적인 외상을 겪은 아이로 보지도 않았다. 그는 평범한 10대 남자아이에게 하듯이 보리스에게 농담을 건넸다. 자기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와 스크럼 하프(럭비 포지션 중 하나. -역주)의 기술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면서, 보리스가 그저 평범한 청소년인 것처럼 대했다. 그의 이런 면은 어린 보리스에게 엄청나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보리스는 에밀과의 접촉으로 인해 배움에 대한 갈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지체되어 있는 자신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려야겠다는 맹렬한 갈망을 느끼게 되었다. 회복탄력성을 전해준 이 멘토와의 만남은 불과 몇 주 만에 경이로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이 결정되었다. 즉 보리는 나중에 자라서 에밀 같은 인물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 보리스도 역시, 럭비를 시작했다. 또한 그는 자기가 살아온 그 컴컴한 심리적 어둠의 이면을 밝히기 위해 신경정신과 의사가 되어야 했고, 에밀과 같은 과학 연구자가 될 것이었다. 시륄니크는 이 일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토록 빠른 속도로 일어났던 그 지적인 변모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놀랍기만 하다, 나의 정신적인 삶은 고작 세 살 나이에, 그러니까 어머니가 홀로 남겨지셨던 그 시기에 이미 멈춰버렸다고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프랑스 군대에 입대하고 난 후 체포가 임박하자 어머니가 몹시 불안해하셨기 때문이다. 그 사건에 이어서 몇 년 동안 쫓기는 삶이 이어졌다. 나는 항상 죽음과 아주 가까이 인접해 있었고 내 감각도 점차 외부와 단절되어가는 긋한 느낌이 들었다. 감정적인 균열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학교에 가거나 외출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때도 많았으며, 남들과 다른 하나의 괴물이 된 것 같던 그 느낌은 내가 최소한의 발전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이런 정신적인 압박감을 받는 동안 정말 괴로웠다. 내 영혼이 얼어붙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심리적인 단말마' 상태에 놓이게 되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마치 행복이 갑작스레 폭발하듯, 나의 내면에 숨어있던 생명력이 다시 나를 찾아온 데에는, 그저 내 바로 앞에 감정적인 대체물들을 놓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즉 아름다운 무용수 이모와 더불어, 몸도 마음도 튼튼한 어느 과학자를 말이다." 이제 보리스의 삶에서는 다른 소중한 만남이 이어졌고, 그 만남은 삶에 대한 그의 갈망을 북돋고 강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닐 때 알게 된 친구들과의 만남, 에밀 졸라와 찰스 디킨스, 프로이트가 남긴 책들과의 만남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 모든 종류의 다른 만남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은 에밀과의 만남이었다. 보리스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와의 접촉 덕분이었다. 물론 그의 이모인 도라도 그에게 있어서 회복탄력성의 멘토가 되어주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에밀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소로 새로운 인생의 궤도 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어쩌면 에밀은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좋은 본보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남의 결과는 -이것이 바로 만남이 지니는 어마어마한 위력이기도 하다- 무척 특별했다. 하나의 삶이 새 출발을 하게 됐고, 한 인간 존재가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나 행복을 새로이 믿게 됐다. 이것이 만남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진행 중인 만남의 초기 징후들은 심리적인 동요와 호기심, 하나의 인식, 그리고 이 만남에 자신을 던지려는 갈망이다. 또한 타자성의 경험과 하나의 변화, 책임감, 구원도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만남의 징후들이다. 본질적으로 이 징후들은 우리가 단지 우연의 힘만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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