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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징후들:타인이 내 삶을 구원할 때

by 딘성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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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를 생각할 때, 우리의 삶을 구원해 주는 만남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키지 않을 수 없다. 그 또한 우리 삶에서 만남이 지닌 결정적인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영화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진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이야기는 삶을 구원하는 만남에 대한 하나의 감동적인 예시를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에 블라덱은 폴란드의 국영 라디오 방송국에 소속되어 있는 공식 피아니스트였고 폴란드의 문화계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만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리스트의 곡들이나 쇼팽 연주를 좋아했고 그가 작곡한 곡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폴란드를 침범한 독일의 나치 세력들이 바르샤바의 게토(유대인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강제한 도시의 거리나 구역을 뜻한다. -역주)에 가두었던 유대인들을 붙잡아 들이기 시작했고, 곧 유대인 수용소로 향하는 기차들의 행렬이 규칙적으로 이어진다. 블라덱의 가족 역시 트레블링카에 있는 수용소에 끌려갔지만, 그는 간신히 도망쳐 나와 레지스탕스들이 사는 집에서 은신처를 발견한다. 하지만 바르샤바에서 벌어지는 전투들은 점점 격렬해졌고 그가 숨어 지내던 아파트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새로운 곳으로 도망을 치기 위해 거리를 계속 헤매던 그는 폭격으로 반쯤 부서진 어느 집의 다락방에 들어가 숨어 지내기 시작한다. 한편 독일 국방군 소속의 빌헬름 호젠팰트 대위는 한 사건으로 인해 병사들 사이에 이미 유명한 상태였다. 상관의 명령을 거스른 채 제네바 협약(전쟁으로 인한 부상자, 병자, 포로 등을 보호하여 참화를 경감하기 위해 제네바에서 체결된 국제 조약. -역주)의 뜻을 존중하며 포로들을 인간적으로 신문했던 일이 그것이다. 사실 그는 자신이 젊었을 때부터 몸담고 있는 독일 국방군이 유대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그 끔찍한 현실의 참상을 보면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또한 그는 음악 애호가이기도 했다. 호젠팰트 대위가 블라덱이 숨어있던 그를 마주쳤을 때, 그는 블라덱이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먼지로 뒤덮인 그랜드 피아노를 가리키며 연주를 해보라고 권했다. 블라덱은 가까스로 간단한 조율을 마칠 수 있었고 힘겹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굶어서 기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이리저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거대한 집 안에서 쇼팽의 아름다운 곡이 흘러나왔다. 결국 이 유대인 피아니스트는 야만적인 나치가 유대인들에게서 무엇을 약탈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피아노의 명인이 넝마를 걸친 폐인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젠펠트는 자기만 아는 은신처에 그를 숨겨주었다. 그러고는 그 은신처에 정기적으로 찾아와서 빵과 잼, 소시지를 가져다주었으며, 혹독한 추위를 막아줄 독일군 제복까지 가져다주었다. 얼마 후 소비에트 연방이 이끄는 붉은 부대가 바르샤바를 해방시키며 독일의 군인들은 포로로 생포되었고, 블라덱은 마침내 환하게 밝은 대낮에 당당하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는 폐허가 된 거리 한가운데에서 망연자실한 채 섰다. 자기가 입고 있던 외투가 독일군 장교 제발이라는 사실마저 잊고 있던 그는 그 옷 때문에 하마터면 폴란드 폭도들에 의해 공격을 받을 뻔했다. 다행히 그들은 적군의 제복을 입고 있는 블라덱이 자기들과 같은 폴란드인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나중에 블라덱은 호젠팰트를 만났던 일화를 담은 자서전『죽어가는 도시』를 1946년에 출판했다. 이 책은 1998년에 『피아니스트』로 제목을 바꿔서 다시 출판되었고,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상영되었다. 아마도 블라덱은 호젠팰트와 만나지 못했더라면 분명 굶주림이나 추위로 죽었을 것이다. 그들이 정말로 상대방을 알아볼 시간을 갖지 못했더라면, 그리고 '타인이 지닌 차이점을 탐험하는' 시간을 갖기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자.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만남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만남은 피아니스트의 생명을 구해주었을 뿐 아니라 두 사람이 단시간 안에 아주 강렬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듯 이 세상에는 삶이 간결하게 압축되기도 하고, 삶이 한 곳에 축적되기도 하며, 또는 삶이 맹렬한 속도를 내는 상황들이 분명 존재한다. 전쟁이 끝난 후 블라덱은 국영 라디오 방송국의 전속 피아니스트 직책을 되찾았지만, 그의 가족들은 모두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최후를 맞은 뒤였다. 블라덱은 자기를 구해준 대위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어서 주변에 수소문을 했지만 그 노력은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몇 년이 흐른 뒤에 그는 호젠팰트 대위가 1952년에 소비에트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외의 다른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독일 국방군 대위 빌헬름 호젠팰트는 그가 사망한 지 약 60년의 세월이 지난 2009년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정의로운 행동을 했던 사람'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만남이란 별로 특별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삶을 구원해 줄 수 있다. 특별히 영웅적인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병을 제때 진단해 주는 의사와의 만남도 그렇고, 우리와 함께 좋은 '동맹관계'를 맺음으로써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심리 치료사와의 만남도 그렇다. 또한 유명한 신경정신과 의사 보리스 시륄니크가 '회복탄력성'(제자리로 되돌아오는 힘을 자칭하는 말로서, 심리학에서는 역경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을 뜻한다. -역주)'을 만들어주는 멘토라고 자칭하기도 했던,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중 한 명과의 만남도 우리의 삶을 구원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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