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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징후들:우연히 운명처럼 나타날 때

by 딘성 202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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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 낯설고도 분명한 어떤 감정이 생겨나 내적인 동요를 더 가중시키는 일이 가끔 벌어진다. '나는 이 사람을 전혀 몰라. 지금 막 만났는걸. 하지만 확신해. 이 사람이 바로 내가 찾던 사람이야.' 이런 감정은 우리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일종의 신뢰감을 일으켜서, 실제로 그 사람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사람으로 느껴지게끔 만든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사람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난 순간, 내가 이미 그 사람을 만나기로 되어있었던 것만 같고, 그 사람과의 약속이 원래 잡혀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 될 어떤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 느끼게 되는 이 친숙한 인상과 기분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와 마주하자마자 즉각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서로에 대한 이해심도 상호적으로 생겨난다. 때로 이런 상황이 적잖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이런 만남의 시작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당신과 만났을 때, 나는 내가 알고 있던 누군가와 다시 관계를 시작한 것만 같고, 당신과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나는 이미 당신을 알아보았다. 종종 우리는 상대와 처음 대화를 나눌 때부터 이런 친근한 인상과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영혼의 형제를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같은 노래를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고, 우스꽝스러운 어떤 장면을 보면서 같이 폭소를 터뜨리고, 타인의 몰상식한 태도를 보고 같이 분노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도 우리 둘 사이에는 모든 상황이 쉽고 부드럽게 진행된다. 이런 경험은 우리가 전생에 형제나 자매, 아니면 특별한 어떤 관계가 아니었는지를 자문하게 만든다. 만나자마자 당황스러울 정도의 강한 친근함이 느껴지고, 혈연관계와 비슷한 유대감마저 생겨난다. 그런데 새로 알게 된 이 사람이, 본래 전혀 몰랐던 이 낯선 타인이 어떻게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탐구 방향이다. 크리스토프가 처음으로 연주했으며 알랭 바슝이 리메이크했던 노래 <애송이의 말들> 가사를 살펴보자. '나는 그녀에게 애송이처럼 어리숙한 말들을 속삭이겠어. 그것들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말이거든. 말 없는 사랑 이야기에는 격식도 필요하지 않아. 무의미하게 이어지는 긴 대화들은 우리의 재회가 지닌 멋진 분위기를 그저 망쳐놓기만 할 거야.' 이 노랫말은 좋아하는 여자에게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그들의 만남을 상상만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그녀를 관찰하고 망설인다. 또 그는 그녀를 기다리기 위해 항상 같은 장소로 돌아오곤 한다. 그는 여전히 그녀에게 말을 못 걸지만 그녀에게 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를 어떤 말들을 떠올린다. 그 말들이 아닌 다른 말을 하려면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낫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왜 '재회'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만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쩌면 그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가 그녀를 "다시 만났다." 아마도 그는 자기의 어린 시절과 자기의 과거,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 또한 그의 세계를 만들어준 남녀들을 그녀의 어떤 면과 연결시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노랫말에서도 볼 수 있듯 만남이 만들어내는 충격은 때때로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남자는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 것만 같은 느낌까지 받는다. 어쩌면 그는 그 존재의 의미부터, 즉 자기 운명의 진실로부터 그동안 동떨어져 있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즉 그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내는 소리를 그동안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느껴지는 생생한 감정을 분명히 믿고 있다. 그는 스스로 그것을 확신한다. 폴 엘뤼아르는 이런 말을 했다.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약속만 존재할 뿐이다." 이 말에는 이 초현실주의 시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즉 타인과의 약속이나 자신과의 약속, 또는 자기 운명과의 약속이라는 문제가 갈부 되어 있다. 모든 종류의 약속에 있어서 현재 진행 중인 어떤 만남의 지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분명한 감정-더 정확히 말하자면 알아보기의 감정-이다. 내가 당신을 알아본다는 말은 당신이 나에게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 내가 나 자신을 알아보았다는 말의 의미는 내가 나의 모습이라든가 내 마음에 드는 어떤 것, 아주 오래된 기억,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어떤 상황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내가 나의 운명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우연이라는 가면 아래 숨겨져 있던 내 운명의 실체를 스스로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남을 상징하는 하나의 신호는 바로 이런 인상이다. 우연의 한가운데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었던 어떤 사람과의 약속에 하나의 확실한 감정이 들면서, 그것이 별안간 운명의 외양을 감추는 것이다. 그런 감정은 우리가 하나의 '발견'을 체험하게 만들고, 우리에게 그런 사람을 보내준 운명에 대해 감사의 마음까지 들게 만든다. 나는 내가 마주친 것이 당신인지, 나인지, 나의 운명인지, 아니면 이 세 가지 모두인지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만남이 존재하는 곳에 발견이 존재한다. '발견'이라는 말은 다의적인 힘이 내재된 단어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그것을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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