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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징후들:사회적 자아의 방어벽 깨뜨리기

by 딘성 2022.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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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으로 인한 감정의 동요 때문에 분열되는 방어벽은 종종 사회적인 방어벽에 불과할 때가 많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자아가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며 거의 불가사의하기까지 한 데 비해서, 나의 사회적 자아는 그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경직되어 있다. 이 사회적 자아는 필연성과 단순성을 띠며, 대표적으로 자기소개를 할 때 등장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당신은 무슨 일을 하냐고 질문을 던지며 상대방과 대화를 시작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말은 대화를 시작하는 주제로 정말 형편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데에는 타인이라는 존재를 단지 그가 지닌 직업으로, 또한 그 직업에 따른 사회적 지위로 한정 짓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보통 '사회적인 접착제'라고 일컫는 것들이다. 이 끈끈한 접착제는 때때로 우리의 피부와 옷자락에까지 깊숙이 배어있어서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에 대한 개방성과 자신에 대한 개방성에도 족쇄를 채우곤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행동을 어색하게 만들고, 우리의 판단력을 흩트려 놓으며, 우리에게 생겨난 호기심의 불씨를 단숨에 꺼뜨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적인 접착제에 들러붙었을 때 스스로 빠져나오는 방법을 모른다. 그들 앞에 낯선 누군가가 소개될 때에는 어쩌면 하나의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함께 생겨나는 것임에도, 그들은 그 가능성을 보지 못하며 그 만남에 대해 '검토하는 일' 조차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가능성이 지닌 가치에 주목하지도 않고, 큰 동요가 일어날지도 모를 가능성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아놓는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낯선 사람이 자기들이 세워놓은 사회적 기준에 들어맞지도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 직업을 갖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어떤 특별한 만남들은 우리에게서 이 접착제를 떼어내고, 우리가 지닌 방어벽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리는 충격을 만들어낸다. 즉 이런 만남에는 단단히 굳어져 있던 자신의 정체성 위로 자유의 바람이 불게 하는 힘이 있다. 마리보의 희곡 『사랑과 우연의 장난』에서는 이 자유의 바람이 부는 장면이 잘 그려져 있다. 이야기는 실비아와 도랑트 두 남녀의 집안에서 그들의 결혼을 주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실비아는 아버지에게 도랑트를 먼저 만나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본래 모습이 아닌 하녀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비밀리에 구혼자를 충분히 관찰하려고 계획한다. 그런데 도랑트 역시 그녀와 똑같은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시종의 옷을 입고 변장을 한 채 실비아를 만난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가면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매력을 느꼈고, 결국 사랑에 빠지고 만다. 상대방의 사회적인 조건이 자기의 평소 기준에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감정의 동요에 기습적으로 사로잡힌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만남이 지닌 진정한 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만남은 하염없이 늘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을 없애주는 힘, 예측을 벗어나게 해주는 힘, 그리고 판을 엎어서 새로운 카드를 나눠주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 실비아는 도랑트의 시종으로 알려진 그 남자가 그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에 대해 스스로 놀라움을 느낀다. 처음에 그녀는 계속해서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그녀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고, 감정이 흔들이는 동안에는 어떤 이성적인 논리도 힘을 쓰지 못했다. 사실 사회적인 조건은 운명이 될 수 없다. 이 연극에서처럼, 어떤 만남들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늘 상기시켜 준다. 하지만 사회적인 접착제로부터 자신을 떼어내는 일은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힘든 법이고 큰 혼란까지 불러올 수 있다. 비록 실제로는 이 두 사람이 대등한 사회적 직위에 놓여있고 두 집안의 약속에 따라 앞으로 그들이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해도, 진실을 모른 채 갈등하던 그 순간에 그들이 느낀 정신적인 동요는 두 사람의 사회적인 정체성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것'을 뛰어넘는 과감한 도약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도약은 하나의 위반 행위이기에 그만큼 더 감미롭고 더 흥미진진한 자극을 주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던 심오한 자아에게 새로운 권리를 돌려주었다. 즉 이 만남은 사회적인 자아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서 명료해 보였던 것들을 어지럽혔고, 뚜렷해 보였던 윤곽선을 흐릿하게 만들었으며, 때로는 속임수나 술책을 폭로하기까지 했다. 만남이 불러일으킨 동요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될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며 한 인간으로서 완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너무나 강렬한 감정이다. 이렇게 드러난 내면적인 자아는 이제 사회적 자아에 의해 더 이상 감추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면적 자아는 돌연 그 경계를 뛰어넘어 사회적 자아 위로 넘쳐흐르게 된다. 만남이 일으키는 동요는 한 사람이 지나온 삶의 여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때로 눈 깜짝할 사이에 생겨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자아를 불러오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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