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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징후들:만남이 가져다주는 충격들

by 딘성 2022.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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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두 사람의 세계를 전복시키고 두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때 낯선 무엇인가가 생겨나는데, 그것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기습적으로 사로잡는다. 그것이 바로 하나의 만남이 가져다주는 충격이다. 프랑스어에서 '만남'을 의미하는 명사 '라 랑콩트르la ren-contre'는 옛 프랑스어 '앙콩트르encontre'라는 단어에서 파생한 것이다. 본래 '앙콩트르'는 '길에서 누군가와 부딪치는 일'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 의미에서 유래한 '만남'이라는 단어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충격을 던져주는 것을 뜻한다. 두 사람은 접촉을 시작하고 서로 충돌한 후, 곧이어 자기들의 삶의 궤적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물론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로 타인과 마주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어떤 흔들림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이 두 사람의 접촉에 '만남'이 존재하지 않고, '마주침'만 존재했다는 근거가 된다. 사실 나와 타인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보다 더 놀랍고 더 어려우며, 때때로 더 성가시기까지 한 일은 찾기 힘들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고 다른 인생을 살아왔으며, 세상을 바라보거나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에 있어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을 마주친 순간 내가 무덤덤하다면 그 이유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내가 바로 알아챘거나 혹은 당신에게서 당신이 아닌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만남이 던져주는 이런 동요는 흔히 시각적인 충격으로부터 시작된다. 톨스토이 소설의 유명한 여주인공 안나 카레니나가  기차역에서 브론스키 백작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녀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가 그를 마주친 순간에 느낀 동요는 아주 즉각적인 것이었고, 그녀의 눈에 비친 브론스키의 모습은 그의 주변에 있는 수많은 군중들로부터 이미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이런 식의 동요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환기시킨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해서 갑작스런 동요를 느낄 때 보이는 어떤 몸짓이나 징후들은 순식간에 타인의 눈에 포착된다. 이 사실은 그런 동요가 얼마나 불시에 우리를 덮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는 심장 박동, 더듬거리는 말투, 바짝바짝 말라가는 입, 온몸에 흐르는 땀, 할 말을 잃은 순간들. 생명력을 상승시키는 이 막강한 힘을 느낄 때 우리의 육체는 이상 반응을 보인다. 육체가 그런 동요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동요가 시각적인 것이 아닌 청각적인 형태로, 즉 목소리의 울림으로 찾아올 때도 있다. 이 목소리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한 후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던 기억들을 깨어나게 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과거의 어떤 목소리가 돌연 우리를 부르는 것이다.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은 전화기 너머로 피에흐 술라주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 자신이 아직 만나지 못했던 이 화가와 언젠가 만나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두 사람의 만남이 가져온 동요의 진동이 더 지적인 차원에서 나타날 때도 있다. 본래 정치적인 일에 무관심한 자세를 고수하던 피카소는 시인인 엘뤼아르와 수년째 서로 스쳐 지나는 식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1934년의 어느 날, 엘뤼아르가 피카소에게 자신이 평화적인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피카소는 이 정치적인 비전에 마음을 열게 된다. 피카소는 바로 그 순간에, 마침내 엘뤼아르와 만나게 되었다. 타인이 나를 동요시키는 만남의 사건은 때때로, 오직 충만한 감정만으로도 일어나기도 한다. 1970년대 중후반에 유행했던 인디 록 음악 장르에서 가장 전설적인 한 쌍의 뮤지션이었던 데이비드 보위와 이기 팝의 관계가 그렇다. 그들은 두 사람의 음악 세계가 일치했기 떄문에 만난 것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보위는 그 무엇보다도 이구아나(이기 팝의 별명이다. 그는 자신이 보컬로 활동했던 밴드를 결성하기 전에, '이구아나스Iguanas'라는 스쿨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는데, '이기Iggy'라는 예명도 이 밴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역주)의 외로움과 우울함에 깊은 공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와 만났던 것이다.

이렇듯 만남이 유발하는 동요는 그것이 어떤 형태를 지녔든지 간에,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어떤 느낌에서부터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키는 강렬한 체험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온다. 그런 동요는 삶이란 것이 우리를 얼마나 놀라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흔들림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동요를 느낀다는 그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고 그저 항복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더 이상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음을 느낀다. 이제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두 사람의 존재가 각자의 세계를 건너와서 상대와 관계를 트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접촉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직 모른다(피카소는 엘뤼아르를 만난 후 더 왕성한 창조력을 발휘했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브론스키 백작을 만난 후 결국 죽고 말았으니 말이다). 두 사람의 만남 이후에 그런 결과들이 나타났다는 것만이 진실이다. 혹시라도 우리가 우리의 고유한 정체성과 습관에 평온하게 안주한 채로, 독립적이고 자급자족적인 단세포 동물처럼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엉뚱한 환상을 키우고 있었다면, 누군가를 만난 후 우리는 그 환상에서 돌연 깨어나는 경험을 할 것이다. 만남이 이루어질 때 우리의 안락함은 중단되고 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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