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만남의 징후들:당신의 모든 세계에 대하여

by 딘성 2022. 8. 9.
반응형

영화<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아델에게 머무는 엠마의 시선과 미소 속에 호기심의 감정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단 아델은 엠마보다 더 어렸고, 동성애자들이 드나드는 클럽에서의 기본적인 매너도 전혀 몰랐다. 지금 막 다른 세계에서 건너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럽에 들어선 이 낯선 존재, 그곳에 늘 자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아델의 모습이 엠마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된다. 엠마는 이 낯선 여자아이에게 마음이 끌리고, 아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졌다. 타인을 향한 이 호기심, 또한 타인의 세계에 대한 이 호기심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그 호기심은 이전까지의 만남들과는 완전히 다른 특별한 징후였다. 이 만남에서 주목할 점은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미지의 낯선 사람에게서 이상하리만큼 친근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그런 순간이 아니라, 자기와 완전히 다른 사람을 향해 다가가려는 욕망을 품는 순간이다. 비록 그 '다름'이 친근하게 느껴지지는 않을지라도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가깝고 편하게 느껴지는 존재들뿐 아니라 낯설고 생소한 존재들에게도 매혹을 느낀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둘러보려는 갈망에 사로잡혀, 그 세계의 문턱 위로 불쑥 뛰어들게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남이란 어떤 미지의 여행으로 떠나게 해주는 초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여행은 지리적이기도 하고 문화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낯선 사람은 다른 장소에서 왔고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왔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 여행은 '이국적인 정서'를 느끼게 해줄 조짐을 갖고 있다. 물론 이런 만남은 두 사람이 서로 동일한 사회문화적인 환경의 한복판에 있을 때에도 이루어질 수 있다. 여행과도 같은 이 만남의 경험은 국경을 건너 이동하는 순간에도, 무심히 길을 건너면서도, 우리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 혹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에게 가는 동안에도 생길 수 있다. 그 어떤 경우에서건 그 사람의 세계는 나의 세계와 항상 다르기 마련이며, 그 세계는 내 시야의 축을 흔들어놓고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시드니 폴락 감독이 연출했으며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식에서 무려 7개 부문의 상을 받았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는 사랑의 열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가로 나오는 여자 주인공 카렌 블릭센 역은 메릴 스트립이 연기했고, 모험가로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데니스 핀치 해튼 역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했다. 우선 덴마크의 출신인 여자와 평범판 수렵가에 불과한 영국인 남자의 만남은 문화적인 충격을 보여주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두 세계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여자는 거대한 농장을 경영하는 부유한 특권층이고, 남자는 혼자 경비행기 타는 것을 즐기고 그 무엇보다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처음으로 시선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우리는 이미 두 사람 사이에 매혹적인 호기심이 싹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만남에서는 갑자기 벼락에 맞듯 첫눈에 반하는 감정이 아닌, 상대방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강렬하고 상호적인 욕망이 포착된다. 그들의 첫 만남은 아프리카 대초원의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진다. 카렌이 타고 있던 기차가 초원을 달리다가 잠시 멈춰 서는데, 이는 데니스가 그 기차에 코끼리의 상아들을 싣기 위해서였다. 카렌은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데니스도 그 기차에 올라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몇 마디를 주고받았을 뿐이며 기차는 다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은 두 사람으로 하여금 서로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욕망이 피어오르게 만든 아쉬운 시간이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여정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호기심도 함께 증폭된다. 상대에 대해 수수께끼를 느낄수록 그들은 더 열렬히 그것을 파헤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제의식이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이 영화의 빛나는 장면들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신비로움이 가져다주는 그 깊은 심연에 대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는 카렌과 데니스가 촛불을 밝힌 채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이런 반복은 자칫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시드니 폴락 감독은 그 장면을 통해, 상대방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의 감정이 여러 갈래로 가지치기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주 조금씩 전달된 정보들과 침묵의 순간들, 말이 없지만 소통하고 있는 순간들을 통해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 얼마나 더 증폭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또한 그 호기심이 두 사람의 관능적인 욕망을 어떻게 솟아나게 했는지 보여준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자신의 책 『알파벳』중 '욕망'의 이야기를 다룬 '디D' 장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누군가를, 혹은 그 무엇인가를 결코 욕망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의 총체'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완전한 총체 속에 있기를' 욕망한다. 즉 우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갈망하는데, 그 세계는 우리가 마주친 적이 있는 어떤 경험과 연결된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일단 그 세계에 대해 아주 오래된 부스러기 같은 것만을 짐작할 수 있다. 익숙한 습관이나 몸짓, 가까운 친구들과 권태로움, 묵은 감정들, 우리가 인식한 것들, 추억들 등등.... 질 들뢰즈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꽃 핀 소녀들의 그늘에서』(총 7부작으로 구성된 장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2부이다. -역주)에서 들려주었던 이 문장 속의 은유를 자기의 주장에 덧붙였다. "우리는 단지 한 여인만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여인이 둘러싸고 있는 풍경의 총체를 갈망한다." 따라서 그녀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가 그곳에서 거닐 수 있는 어떤 풍경을 펼치려는 욕망을 품는 것이다. 또한 그녀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가 그 풍경을 펼치는 데 시간이 꽤 소요될 거라는 생각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고, 우리가 거기서 정확히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는 막막함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들뢰즈는 또 이렇게 설명했다. "욕망한다는 것은 그 욕망의 대상 주변에서 하나의 조합을 구축하는 일이고 하나의 총체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기심과 욕망은 단지 타인만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주변에 이미 생성되어 있는 그 조합과 총체 모두를 통합하는 작용을 한다. 즉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모든 세계에 대해, 당신과 연결되어 있고 당신 주위에 배치된 모든 것들에 호기심을 느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