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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징후들:내 삶이 아닌 다른 삶들

by 딘성 2022.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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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어떤 예술 작품이나 그림 한 점, 소설 한 편, 영화 한 편과의 접촉을 통해, 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내가 최근에 이렇게 내 중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는 것 같은 경험을 한 것은 바로 엠마뉘엘 카레르의 소설 『왕국』의 독서를 통해서였다. 이 소설은 오랫동안 무신론자로 지냈던 작중 회자가 어떻게 몇 년간의 신앙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는지, 또 이렇게 신의 '왕국',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의 '왕국'을 한동안 발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신앙은 처음에 돌연 생겨났던 것처럼 돌연 사라져 버린다. 나는 이 방대하고 매혹적인 책에 푹 빠져들어서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공부도 했고, 내가 겪었던 신비로운 경험에 대한 개인적인 숙고의 시간도 가졌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어느 날 아침,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서 사라져 버리고, 이 사건은 성사에 하나의 휴지기를 만들어놓았다. 책 속에서 신의 왕국은 이 세상 너머의 어느 다른 곳에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작중 회자처럼 나 역시도 원래 무신론자이자 불가지론자였기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기독교적인 믿음의 실체와 가까이 닿았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책을 읽은 후에 그 상황은 역전되었다. 그 경험의 첫 번째 걸음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누군가가 예수의 시신을 훔쳐간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삶 전체가 현성용(거룩한 모습을 드러내는 일. 예수가 이스라엘의 타보르산 위에서 자신의 거룩한 모습을 드러낸 일을 뜻한다. -역주)했다는 성사를 믿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상황이 뒤집어지기 위해서는 복음서의 이 성스러운 소식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도다." 나는 이 작품의 독서를 통해, 지금까지 이 세계를 '합리적인 서구'로, '의심을 멈추지 않는 회의주의적인 세계'로 인식했던 습관을 내려놓게 되었다. 또한 나는 나의 내면에, 내가 그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 하나의 신비로운 공간을 심어놓았다. 그러고는 그 신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 신비의 마음으로 세상만물을 느끼기 시작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나는 한 권의 책을 만났고, 이 책을 통해 책의 저자와도 만났다. 오늘날까지도 내 안에는 이성을 초월한 신비로움의 공간이 남아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기독교에 대한 영역일 것이다. 이 책의 독서를 통해 나는 그 세계에 대해 마음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독교신자로 변모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작품을 읽은 경험이, 즉 몇 달에 걸쳐 내가 겪은 미적인 경험이 내 내면성의 경계를 밖으로 밀어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내가 가진 시각과 다른 결을 지닌 시각에도 마음을 열게 되었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다른 작품 『내 삶이 아닌 다른 삶들』이라는 제목처럼 말이다. 이 작품 역시 타자성을 경험하는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작중 화자인 작가는 파리에서 특권층의 삶을 영위하다가 나중에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지진 해일로 인해 소중한 아이를 잃은 한 부부의 시선과, 산더미 같은 빚의 올가미에 갇힌 사람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재발견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 소설은 그 제목만으로도 이번 장의 주제를 요약한다. 당신을 만나는 것, 그것은 '내 삶이 아닌 다른 삶'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플라톤이 말했듯이 우리가 철학을 하려면, 그리고 타인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데 성공하려면 타인을 사랑해야 한다. 물론 우리로 하여금 타자성의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사랑과 우정뿐만은 아니다. 책에 대한 사랑, 작가들을 향해 품고 있는 그 특별한 사랑 역시 타자성을 경험하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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