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만남의 징후들:그렇게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by 딘성 2022. 8. 10.
반응형

타인에 대한 이 호기심에는 지속성이라는 위력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장소에서 과도하게 타인들과 연결되어 있고 수많은 요청을 받으며, 스마트폰 알림을 통해 끝없는 호출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관계를 새로 만들어내서 지속시키고, 더 깊이 있게 심화시키는 행동이 지니는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릴 위험에 처해있다. 모든 것들에 대해 궁금해했던 우리는 이제 그 어떤 것에도 호기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호기심을 갖기 위해서는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 세계가 너무 무궁무진해서 어쩌면 우리가 거기서 결코 헤어 나올 수조차 없을 그런 세계를 발견하는 일이다. 또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금방 식지 않을 어떤 강한 호기심을 느끼는 일이며, 며칠 안에 사라져 버리지 않을 한 사람의 신비로움을 이해하는 일이다. 바로 여기에 이 시대의 소란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출구가 존재하고, 만남을 위한 수많은 아름다운 약속들 중 하나가 존재한다. 우리가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고집스럽게 유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힘을 통해, 결국 우리 주변의 산만함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고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 역시 만남의 이치에 부합하는 그런 만남을 경험한 적이 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만났던 철학 선생님이 그 주인공인데, 나중에 이 선생님은 내 가장 가까운 지인 중 하나가 되었다. 선생님과 나의 첫 만남의 순간을 되돌아볼 때, 무엇이 우리의 인연을 깊게 이어준 것인지 이제는 좀 더 분명히 이해가 된다. 그 만남은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어느 수업이 시작되기 전, 학교의 뜰에서 이루어졌다. 선생님은 학생들 몇 명과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우연히 그 옆에 다가가게 되었고 어느새 그들의 토론에 끼여 대화에 동참하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교실로 돌아가기 전에 나에게 몇 반 학생인지를 물었고 우리는 잠시 동안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나는 1지망으로 이과를 선택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다음 해에도 그 철학 선생님을 만날 가망성이 전혀 없던 터였다. 아쉽게도 그는 문과 반 학생들만 가르치고 있다. 그러다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나는 그 소설이 내게 준 충격에 휩싸여 있었지만 그는 그 작품에 대해 좀 더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눈빛은 그가 그 유명한 작품을 완벽하고 심도 있게 읽었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대화를 마치고 인사를 나눴다. 내가 교실로 이어지는 계단에 막 올라가려고 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웃는 얼굴로 나를 부르더니 조언을 건넸다. 아예 진로를 바꿔서 문과로 들어오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그러고는 농담을 덧붙이셨는데, 그것은 이 학생이 이과에 그대로 남을지 전과를 할지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선생님 자신, 즉 철학 교사라는 직업을 도마 위에 올린 유쾌한 농담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철학 쪽으로 진로를 바꾸면 대재앙이 뒤따를 수도 있어. 차라리 클럽 메드에서 상주 직원이 되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몰라." 그러나 나는 몇 달 후 그의 조언대로 문과로 반을 옮겼다. 정말이지 선생님의 세계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후에 나는 선생님의 장례식에서 장례 집행인이 되었다. 선생님을 만났던 일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발견했던 경험이었다. 물론 그가 나로 하여금, 플라톤과 헤겔의 철학 책들을 탐독하게 만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다음과 같은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는 그런 철학자들만큼이나 많은 다른 유형의 사람들, 즉 퓔리니 몽라쉐 와인과 사비니 레 본 와인을 만드는 와인 생산자들과 여러 테니스 선수들, 브르타뉴 지방의 뱃사람들과 내가 어울릴 수 있게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그 세계에서 우리는 오래된 빨간색 잡지《골프》를 서로 돌려봤고,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더불어 《스포츠 팀》 잡지를 읽곤 했다. 제자인 우리들은 그분 덕분에 미지의 영역을 향한 도약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는 자신의 강렬한 호기심을 발견했던 것이다. 하나의 과목이나 어떤 전문 지식과의 마주침 뒤에는 흔히, 한 사람이 지니고 있던 호기심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자기의 전공과목을 공부하기 위해 갖게 된 그 호기심은 우리들이 그 사람에 대해 갖게 되는 호기심과 분리할 수 없다. 만약 내가 선생님의 인간적인 성품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지 않았다면, 과연 헤겔이나 스피노자의 심오한 사상에 대해 그토록 강한 궁금증을 품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호기심은 선생님의 장례식 날에 더 고취되었다. 고인과 있었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추도 자리에서였다. 선생님의 형제들이 짧은 연설을 하는 동안, 나는 선생님께서 내게 한 번도 털어놓지 않았던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선생님께서 내게 항상 하시던 이야기와 완전히 상반되는 것들이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선생님은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까지 내 궁금증을 자극하신 것이다. 때로 타인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그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남기도 하는 법이다.

반응형

댓글